희망 / 김소월
날은 저물고 눈이 나려라
낯 설은 물가으로 내가 왔을 때.
산(山) 속의 올빼미 울고 울며
떨어진 잎들은 눈 아래로 깔려라.
아아 숙살(肅殺)스러운 풍경(風景)이여
지혜(智慧)의 눈물을 내가 얻을 때!
이제금 알기는 알았건마는!
이 세상 모든 것을
한갓 아름다운 눈어림의
그림자뿐인 줄을.
이울어 향기(香氣) 깊은 가을밤에
우무주러진 나무 그림자
바람과 비가 우는 낙엽(落葉) 위에.
▷ 숙살(肅殺)스러운 : 을씨년스런. 스산하고 썰렁한.
▷ 우무주러진 : 우므러들고 오그라진. 우물어들고 줄어진.
1902∼1935 본명 정식(廷湜).
평안북도 구성 출생.
오산학교과 배재고보를 거쳐 동경상대 중퇴. 오상학교 시절 스승인 김억에게 지도를 받음.
시집으로 『진달래꽃』이 있음.
<해설 / 장노현>
제목과 내용 간에 불일치를 통해 아이러니칼한 상황을 보여준 시이다. 소월의 다른 시, 예컨대 <낙천> <열락> <세상 모르고 살았노라> 등의 시에도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에서 오는 극적 아이러니의 상황이 제시되어 있다.
이 시의 화자는 낯설은 물가에 와 있는 나그네이다. 충만한 시대의 나그네라면 낯선 지방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가득하겠지만, 이 시의 나그네에게는 '숙살(肅殺)스러운 풍경(風景)'(5행)만 눈에 들어온다. 헐벗은 상실의 시대를 사는 나그네이기 때문일 것이며, 이별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나그네이기 때문일 것이다.
나그네는 길 위에서 지혜를 얻는다. 이 시의 나그네도 지혜를 얻었다. 그런데 거기에는 눈물이 동반하고 있다. '세상의 모든 것'이 '한갓 아름다운 눈어림의 / 그림자뿐'(9, 10행)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. 그것은 바로 허무의 지혜였던 것이다. 허무의 지혜에서도 희망의 샘이 솟을 수 있을까? 소월은 그럴 수 있다고 믿은 것일까? 소월은 그 도저한 믿음을 <희망>이라는 제목 속에 담아 두었다.
|
|
